인문교양] 지(知)의 실패

기사입력 2018-05-2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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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知)의 실패: 과학 기술의 발전은 왜 재앙을 막지 못하는가

(마쓰모토 미와오 지음/김경원 옮김/이상북스/2018년 4월/368쪽/23,000원)

 

과학기술의 발전이 지(知)의 실패에 이르는 지점이 어디일까?

 

점점 구체적 현실이 되어 가는 말기 암과 유전병의 치료, 우주여행, AI 로봇 등을 생각하면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류에게 장밋빛 미래만을 가져다줄 것 같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 지구온난화 문제, 성층권 오존층 파괴 문제, 환경호르몬 문제, 핵폐기물 처리 문제, 유전자변형작물의 안전성 문제 등 치명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책은 지금 인류가 직면한 많은 문제가 과학기술의 발전이 초래한 사회문제임을 상기시키며, 그것을 ‘지(知)의 실패’로 규정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광범위한 사회문제에 대해 과학계나 인문학계 등 학계는 물론 정치집단과 시민사회 집단 등 그 어디에서도 유력한 해명이나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다양한 담론만이 넘치는 현실을 지적한다. 과학기술이 초래한 다양한 사회문제가 급격히 우리를 위협해 오는데, 판에 박은 동일한 사고회로와 행동회로만이 작동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인간의 여러 활동과 과학 및 기술을 동격으로 파악하고 그것이 사회와 일으키는 상호작용의 양상을 분석하는 것, 그다음 정형적이라 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제대로 판별하는 것, 그에 따라 한없이 달라지는 과학, 기술, 사회의 여러 측면에 대한 과거와 미래를 제대로 생각해 나가는 것, 이런 것을 저자는 일반적인 지적 활동이라 전제한다. 그런데 이런 지적 활동이 당장의 성과와 이익 앞에서, 때로는 무심함과 무책임에서 비롯된 실수나 습관적 행위로 인해 간과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여러 대형 사건 사고로 이어졌다.

 

이 책의 저자 마쓰모토 미와오 교수는 일본은 물론 현대의 자본 중심 사회에서 발생한 과학기술의 여러 역사적 실패 사례를 제시하며, 그 원인을 과학기술과 사회학의 단절, 사회학자와 과학기술자의 재발 방지를 위한 책임 회피에서 찾는다.

 

과학기술의 사회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학문의 무능력, 곧 지(知)의 실패를 해결하는 방법을 과학기술사회학의 통찰에 기초해 제시한다. 그것은 기술관료주의(technocracy)와 기술다중민주주의(technomassdemocracy)라는 양대 함정을 피해 진정한 기술민주주의를 이루는 길을 구체적으로 모색하는 것이다. 찬란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왜 인류 사회의 재앙을 막기는커녕 도리어 초래하는지, 이 책에서 내건 ‘지(知)의 실패’라는 견지에서 면밀히 고찰해 보자.

 

그렇다면 과학기술의 발전은 왜 사회에 문제가 되는가?

 

과학기술에 관한 사회문제의 대부분이 겉으로는 인간이나 사회와 동떨어진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과학기술의 문제라기보다는 인간의 내면 또는 인간관계, 사회 구조의 문제다. 그런 문제의 기본 양상을 해명할 때 문과 계열의 학문은 꽤 심오한 의미를 지니고, 그 의미는 모든 이가 마음만 먹으면 과학기술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열린 판단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 듯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를 고려하지 않고 과학기술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과학, 기술, 사회의 경계면에서 발생하는 예측 불가능한 문제들을 정형적 틀에 끼워 맞춰 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나아가 민주주의의 명분을 걸친 기술관료주의를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

 

타이태닉호 침몰,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공중 폭발 사고, 스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 원전 사고,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그리고 세월호 침몰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대형 사고로 전환하는 지평을 부각해 살펴봄으로써 그런 사건이나 사고에 깊이 관여하는 사회 전체의 문제, 즉 사회의 어느 부분을 보더라도 비슷한 구조가 얼굴을 내밀고 있는 문제를 지적한다.

 

제1장에서는 ‘지(知)의 실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히고, 책 전체의 과제와 대강의 논지를 제시한다.

 

제2장에서는 과학기술 정책의 측면에서 ‘지(知)의 실패’를 표현하고, 과학기술의 사회문제를 해명하고 해법을 전망하는 새로운 틀을 드러낸다.

 

제3장은 사회가 과학기술에 보내는 기대와 과학기술이 사회에 제공하는 현실의 성과 사이에 거대한 차이가 존재하는 장면을 통해 ‘지(知)의 실패’를 해명하지 않으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특정해 드러낸다.

 

제4장은 ‘지(知)의 실패’를 극복하리라는 기대를 받는 학제간 연구의 통념이 지닌 환상을 부수고, ‘지(知)의 실패’를 극복하고자 하는 데 필요한 원칙을 제시한다.

 

제5장은 전체의 결론을 정리하고 이 책을 통해 전망할 수 있는 ‘지(知)의 실패’를 피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제언들을 밝힌다.

 

‘과학기술은 왜 사회에 문제가 되었을까’ 또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왜 재앙을 막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하려면 ‘지(知)의 실패’의 상태를 꼼꼼히 고찰하는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차분히 읽어 나가며 왜 그러한지 저자가 이끄는 지점에 도달해 보자.

 

☞ 책 내용 옅보기

사회에는 신구 기술의 과도기에 등장한 기술이 존재한다. 그런데 과도기의 기술을 낳은 사회 안에는 과도기의 기술이 초래한 사고를 수습해 낼 구조가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 책에서는 천재와 인재의 사이에서 사고를 심각한 사회 문제로 증폭시키는 이 상태를 가리켜 구조재(構造災)가 발생했다고 표현하려 한다. 구조재의 두드러진 특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눈앞에서 발생한 사고의 책임을 도대체 어디에 물어야 좋을지 아무도 짐작하지 못한다. 구조재는 천재도 아니고 금방 식별할 수 있는 인재도 아니다. 어디에서도 구조재를 감당할 곳을 찾을 수 없다. 법 제도, 전문가, 관료 기구, 의회, 민간 사회 같은 여러 관계 주체의 틈으로 사고의 책임 문제가 끼어 들어온다는 불명료성이 존재한다. 동시에 책임의 소재를 확정하는 데 80년이나 걸릴 만큼 방대한 시간을 다 써 버려야 한다.

- 「사고는 왜 없어지지 않을까」중에서

 

과학․기술․사회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예측 불허의 사건을 아주 단일한 판단 구조로 이해하는 상태를 지(知)의 경계 문제라고 부르고자 한다. 과학․기술․사회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하고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을 이해하려는 행위는 지(知)의 틈새에 직면하고, 사건에 대한 이해를 돕는 지(知)의 틀의 부재 상태는 계속된다. 그런 상태에서는 될수록 여러 상이한 이해 방식을 조합해 사건의 전체상을 탐색하고, 사건의 다양성과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처음부터 단일한 이해 방식에 의해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한다면, 현실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다양성과 예측 불가능성에 의해 배신당할 가능성이 높다.

- 「과학 기술 정책의 딜레마」중에서

 

전문가가 주어진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해도 강한 불확실성에 의해 전문자의 행위가 별 효과를 내지 못하는 사태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때는 최선의 전문 지식을 통원해 현상을 해명한 결과 전문자는 문제 해결의 방책을 비전문가에게 제시하고, 비전문가는 전문가에게 그 시점에서 느끼는 불이익을 전달한다. 그래서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합의 아래 납득할 수 있는 의사 결정을 하고 응분의 책임을 지고 행동과 결과를 선택하는 길이 존재한다.

-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합작 조건」중에서